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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청은 성종 때 좌·우포도장을 임명한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정식으로 좌·우포도청(일명 좌·우변)을 설치한 것은 중종 때(16세기 초)로, 이후 350여 년 동안 존속되다가 갑오개혁 때인 1894년 7월에 폐지되었으며, 이후 경무청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좌포도청은 파자교(把字橋) 동북쪽(현 종로구 묘동 56번지, 옛 단성사 자리)에 위치하며, 우포도청은 혜정교(惠政橋) 남쪽에(현 종로 1가 89번지, 광화문우체국과 동아미디어 사이) 있습니다.
 
 
포도청은 주로 포도도와 순라(치안), 임금 거동시의 호위, 유언비어 유포(천주교 전파), 괘서 사건, 私鑄錢 제조, 도박 행위, 밀주 제조 등이었습니다.
행정 체제 및 직제를 보면, 행정업무는 주로 형조가 담당하였고, 인원을 관리하거나 녹봉 급여에 관한 업무는 병조가 담당하였습니다.
관할 구역은 좌포도청은 주로 한성부의 동부·중부·남부와 경기좌도를, 우포도청은 한성부의 서부?북부, 경기우도 지역을 관할하였습니다.
직제를 살펴보면 포도대장은 종2품 무관으로, 좌·우변 각 1인, 오위의 총관 혹은 오군영의 대장, 한성 판윤 등을 겸직하였고, 종사관은 종6품으로 좌?우변 각 3인, 군관(즉 捕校)은 무관을 겸직하고, 좌·우변 각 3명, 부장은 좌·우변 각 10명이 배치되었으며, 서원(書員)은 좌·우변 각 4인, 군사 즉 포졸은 좌·우변 각 50명, 19세기에는 각각 64명으로 70여 명까지 증원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